문득 모 국립대 교지의 총장 권두사가 떠오릅니다. ‘신동엽 시인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처럼 맑고 푸른 가을하늘입니다’라는 바로 그 문장입니다.

  아픈 역사의 실체를 토로하는 피의 회한은 차치하고라도 오로지‘하늘’앞에‘맑은’이라는 수식어를 끌어내려는 조급한 문장의 조합일 뿐입니다. 그 다음 문장‘그대가 본 것은 쇠항아리 속’과 연결시키면서 그 학자풍이 만난 맑은 하늘이 바로 쇠항아리였다는 얘긴가요.

  문제는 소통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비극적 희극’과 ‘희극적 비극’의 소통부재를 끌어안고 긴 세월 살아갑니다. 그리고 ‘함께 나가야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기도 하고 더러는 막걸리잔 가뿐 한숨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어둠이 깨다’는 사이버 시대와 동떨어진 채 느리고 정직합니다. 그것은 평소 지인들에게 비친 작가의 모습과 부분적으로 일치하기도 합니다. 우선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주먹질, 욕설, 그리고 거친 사내들이 보여주는 마초 행각과는 거리가 먼 딸깍발이 선비의 실루엣입니다.

  그러면서 등장인물들과 디지털시대 동반의 길을 힘들게 가는 중입니다. 질곡의 시대, 이 난세의 모순이 빤히 보이므로 그냥 강단에 서서 한 마디씩 훈수나 두기에는 마음이 아프지만 그렇다고 변혁 운동의 선두에 서서 구호를 외치기에도 적절한 자리가 아닙니다. ‘앎이 곧 실천’이라는 선구자적 등식은 때로 작가의 몫이 아니므로 어떤 삶이 옳은가에 대한 방향 제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글의 주제는‘너는 누구냐’입니다. 여기서‘너’는‘나’이므로 한마디로 자기 각성제입니다.

  그래서 일까. 작가에게 마땅한 자리가 없습니다. 동굴 속에서 마늘을 씹으며 칩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동키호테도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지식인이 가지고 있는 몸의 한계이며 속성이기도 합니다. 작가들은 체질상 대개‘유목’을 선호하지만 대개 ‘정착’을 통해 삶의 문제를 풀어갑니다. 정착은 스릴이 약한 대신 따뜻한 안정망을 제공합니다. 그래서‘어둠을 깨다’는 다른 작가들이 보여주는 긴장감 있는 구성이나 구수한 입담 그리고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뒤집기도 없습니다.

  끝까지 객기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작가와 교수라는 투잡의 사내 조동길의 스타일을 고수합니다.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시나브로 메시지를 던집니다. 예를들어 209쪽‘곰나루 별곡’의 사소한 문장 하나까지 그렇습니다. 넷째줄입니다. 그냥 곰나루 근방 보리대궁을 묘사한 낱개 문장을 오려봅니다.

  “시위대처럼 어깨를 걸고 줄 지어 늘어선 보리대궁들은 그 바람의 거센 폭력 앞에 우우 신음소리를 내며 한쪽으로 몰려 쓰러졌다.”

  그렇습니다. 움직이는 생명체만 아픔이 있다는 인간 중심적 사고 혹은 동물중심적 사고를 격렬하게 반발합니다. 위로 솟구치려는 보리대궁 앞에 거센 바람은 폭력입니다. 착한 바람은 보리의 겨드랑이 사이에서 함께 놀 수 있지만 거친 태풍은 무서운 폭력입니다. 한겨울 시베리아 칼바람이 몰아치면 억새꽃이건 아스팔트건 전신주 깨진 가로등이건 모두 춥고 배고프고 허허로움에 시달립니다. 그 행간을 찾아내는‘작가의 눈’을 새롭게 느낍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글은 평범한 삶을 위협하는 폭력적 요소들을 겨냥합니다. 소시민의 일상위에 군림하는 자본주의적 배경들을 탐색하고 사람의 존재이유를 반추합니다. 그리고 해결방법을 에둘러 표현합니다. ‘어둠을 깨다’‘한 교수의 돌부리’‘굿바이 써니맘’들의 메시지가 그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군부독재의 잔흔이나 물질만능주의와 도덕적 해체 같은 것들을 경계합니다. 소설은 자본주의의 병폐나 불행의 징후들을 견지하면서 때때로 전지적 작가의 입장에서 도덕적 논평까지 덧붙입니다. 그래서 작가 조동길은 천상 선생입니다. 그게 한계이고 동시에 미덕입니다.

  작가들의 형상을 양분하자면 두 갈래입니다. 토굴 속에서 겨울철을 보내고 장바닥에 긁적긁적 등장하는 양산박 스타일이 있고 단정한 옷차림과 착한 마음으로 이성 세포들을 설레게 하는 학자풍이 있습니다. 이 극과 극의 맵시들은 죽을 때까지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며 자기 생김새를 끌어안습니다. 그러나 그건 겉모습일 뿐 생산된 글을 통해 세상을 향해 던지는 목소리는 비슷할 때가 많습니다. 작가는 소수자의 그늘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를 버리지 못합니다.

  ‘어둠을 깨다’는 세상의 흐름들을 일일이 살피는‘찍사’의 역할을 고수하며 이미 일상화된 부조리의 현장에 작가 혼자 낯설게 나타나‘맞장’을 신청합니다. 그렇게 비판의 목소리를 나타내면서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사유를 자리매김 합니다. 강물 같은 문장들이 갈수록 그렇게 굵은 주름으로 스며듭니다.

  선생님의 글이 있어서 우리들은 참으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