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기획특집 오피니언 공주플러스 포토 커뮤니티
2020.12.1 화 15:32
> 뉴스 > 뉴스 > 사회
     
호서유학 선구자 '서기' 11월 역사인물로
계룡산 자락에 충청우도 최초 충현서원 세워
[1334호] 2020년 10월 30일 (금) 15:34:12 이석하 기자 lshview@hanmail.net
   

공주시 11월 역사인물 '서기' 포스터

공주시가 11월 역사인물로 호서유학의 선구자인 '고청 서기' 선생을 선정했다.

시는 충청우도 최초의 서원인 공암정사(현, 충현서원)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고 기호학파의 맥을 호서 지역에 정립한 서기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재조명하기 위해 11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선생이 공주와 인연을 맺게 된 시기는 1572년(선조 5) 계룡산 아래 공암으로 이주해 후학 양성에 매진한 때부터다. 이후 입향조인 선생을 따라 이천 서씨의 공주 정착이 시작됐다.

선생은 주자의 학문과 교육방법에 따라 제자를 가르쳤고 인근에서 선생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수많은 문인들이 모였다. 이는 선생이 호서유학의 씨를 계룡산 자락인 반포면 공암에서부터 퍼뜨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선생은 미천한 신분으로 인해 벼슬길에 나아갈 수 없어 제자백가 등 다양한 학문과 사상에 관심을 보였지만 20세인 1542년(중종 37) 토정 이지함을 만나면서부터 다른 학문보다 유학이 정도(正道)임을 깨닫고 배움에 정진했다.

이후 선생은 1581년(선조 14) 지역 유생들과 공주목사 권문해 등의 도움으로 주자의 영정을 모시고 고장의 명현을 배향하는 공암정사를 세웠다.

1624년(인조 2)에는 '충현(忠賢)'으로 사액을 받게 돼 1660년(현종 1) 돈암서원이 사액을 받기 전까지 30여 년간 지역의 유일한 사액서원으로 역할을 했지만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철거됐다.

그는 1591년(선조 24) 69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그의 저서는 임진왜란 후 대부분이 유실됐고 현재 충청도 관찰사 홍계희가 여러 문집 속에서 선생의 글을 발췌해 편찬한 '고청유고(孤靑遺藁)'가 전해지고 있다.

현재 반포면 공암리에는 선생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1976년 충현서원이 재건돼 '공감토크 고청사랑방', '박약당 인성교실' 등 선생의 발자취와 선비의 삶을 알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 공주신문(http://www.e-gongju.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공주 소재 기관 이전 용납 못해"
푸르메요양병원 코로나19 4명 추가
푸르메요양병원서 17명 추가 확진…모
1명 푸르메요양병원서 또 확진
푸르메요양병원 1명 추가 발생
9월 역사인물에 백제 '동성왕'
푸르메요양병원 연일 확진…5명 또 발
정진석 의원, '공정사회 회복 3법'
보이스피싱 심각성, 먼저 금융기관이
푸르메요양병원 1명 또 확진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구독신청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충남 공주시 장기로 204-2 공주세종패션타운 B동 2층 Tel: 041-853-8111
사업자번호: 307-81-15873 회사대표: 진충현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하
Copyright 2009 공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e-gongju.com
공주신문을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및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