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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이전
[기고]-이진호 지적박물관장(충북 제천시)
[1321호] 2020년 06월 15일 (월) 18:57:30 공주신문 webmaster@e-gongju.com
   

도청이전은 주민들의 산업·경제·문화·교육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그러니까 이전 설이 나오면 도청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현 주민은 보존운동, 맞이하는 도시에서는 크게 환영해 서로 치열한 경쟁을 한다. 주요 이유는 도내 중앙이 어디인지, 교통은 좋은지이다. 시·군청 이전은 영향이 적지만 도청은 크다

강원도 원주는 1895년 5월 26일 관보에 의하면 관찰도가 폐지 춘천부에 속했고 다른 군은 강릉부, 춘천부가 됐다. 1896년 칙령 제26호는 원주군, 강릉부를 26군으로 통합해 춘천부 관할부가 된다. 그러니까 행정구역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슬그머니 도청이 원주에서 춘천으로 이전됐다는 것이다.

경기도청은 1910년 수원에서 서울로 이전, 수원 토박이 김구배(金九培)의 건의와 수원의 국회의원 이병희, 인천의 유승원 국회의원의 치열한 경쟁 끝에 1963년 12월 16일 수원으로 다시 돌아왔다(이창식·한동민, 『수원야사』)

경남도청은 1925년 4월 1일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했다. 반대운동을 한 대표의 한 사람인 이시이 다카아키(石井高曉)는 책임을 지고 권총 자살을 했다. 그만큼 도청 이전 문제는 심각했다.(『진주대관』, 41쪽) 경남도청은 다시 1983년 7월 1일 부산에서 창원시로 이전했다.

경북도청은 2016년 3월 10일 대구시에서 안동으로, 전라남도청은 2005년 10월에 광주시에서 무안으로 이전했다. 기성회를 조직하고 반대, 찬성 로비나 데모없이 광역시에서 등떠밀다시피 이전했다.

경기도와 경남이 두 번 이전했고 전북도청만이 한번도 이전을 하지 않았다. 전주는 광역시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 눈치 볼일도 없다. 광역시로 승격하지 않은 도가 전주 이외에 충북, 강원도가 있다.

   

                           공주에서 대전으로 도청이전

충청북도청은 1908년 6월 5일 충주에서 청주로 이전했다. 그 주역은 가미야 다쿠오(神谷卓男) 서기관으로 청주로 이전 후 충북 내무부장이 됐다.(정삼철 역주, 『청주연혁지』)

충청남도청은 1932년 10월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했다(『공주시지』 상, 496쪽) 2012년 12월 28일 충청남도청은 대전광역시에서 홍성으로 이전했다. 같은 충청도인데 남도와 북도가 이전 경위가 너무 다르다. 두 도를 비교해 서술한다.

충청북도는 1908년 6월 5일, 남도는 1932년 10월에 이전했으니 전자가 24년 5개월 선배이다. 북도는 그 주역이 충청북도 서기관인 가미야 다쿠오이다. 그는 1872년에 태어나 스탠포드대학과 콜롬비아 대학을 졸업했다. 그 많은 일본의 제국대학 출신이 아니라 미국유학 계열로 드문 인물이다. 청주로 이전한 후 충청북도 내무부장이 됐다. 평안북도 내무부장(∼1912), 나고야시(名古屋市) 조역, 중의원 의원을 지냈다.

이전한 날을 청주에서는 청주의 날(1908.6.5.)로 기념하고 기뻐했다. 이전 이유는 청주가 교통의 중심지라는 것이었다. 1909년 향토지인 『韓國忠淸北道一班』을 저술 간행했다. 이 책은 이 시기의 충북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그는 청주가 충북의 중심이라고 역설하는 청원서를 내무차관에게 로비, 충주 주민에게는 비밀로 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이전했다.

그러나 청주는 남쪽에 치우쳤고 충주가 오히려 중심에 가깝다. 당시 충주지방에는 의병들이 발호해 신변에 불안을 느낀 것이 원인이 아닌가?

그 때 충청북도지사는 권봉수(權鳳洙)였고 가미야는 보직없는 차석 서기관이었다. 그는 상부의 도청 이전 허락을 받고 와서 사노 데루마(佐野照馬) 외 한두명 관리에게 이야기를 하고 번갯불과 같이 이전했다. 권 지사에게 허락을 받았다던지, 통고를 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통감부 때는 대한제국 정부가 엄연히 있으나 실권은 일인 관리가 장악했다는 것이다.

1908년 6월 5일 청주는 급격히 발전했으나 충주는 쇠퇴했다. 이전부터 만 20년 6개월이 지난 1928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 충북선 충주역이 개통되면서 다소 활기를 찾았다.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 여론을 타기 시작한 것은 1925년 진주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산으로 경남도청이 이전이 강행된 때부터이다. 이 소문이 나자 공주 갑부인 김갑순(金甲淳)은 재빨리 대전의 땅을 매점해 개발 이익을 챙겼다.

공주지역에서 도청 이전 반대운동이 시작된 것은 1924년, 1925년경 '충청북도와 합쳐 조치원에 도청을 설치해야 한다'. '대전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신문보도와 1928년 총독부 고위층으로부터 도청 대전 이전설이 나오면서 대전 유지들이 기성회를 조직 도청유치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반대운동을 주도한 것은 유지들이 조직한 공주공영회(후에 공주시민회)에서 1930년 11월부터 본격화됐는데 그때마다 총독부에 반대 뜻을 전달했으나 총독부는 '논의한 사실이 없다'고 시치미를 뗐다. 그러나 1930년 11월 10일 총독부가 '충청남도청 신축예산안'을 편성하면서 구체화됐다.

공주시민회는 회장에 마루야마 도라노스케(丸山虎之助), 부회장은 오경달(吳慶達)로 재정비해 3000여만원의 운동자금을 마련하는 등 박차를 가했다. 총독부는 1931년 1월 13일 내무국장 명의로 충남도청의 대전 이전을 공포했다. 총독부가 강조한 이전 사유는 공주는 교통이 불편해 행정중심지로서 적당치 않다는 것이 첫째 이유였다.

이에 공주시민은 "공주는 1400년의 역사 있는 도 정치의 중심지로서 더구나 일선인(日鮮人) 일만삼천을 포용한 본도 유일의 조선인 도시이니 대전과 같이 일본인을 주로 하는 신도시에 도청을 이전하는 것과 같은 것은 총독부 정치에 반하며 우리 의지에도 반한다"는 결의를 채택한 뒤 조선인, 일본인 동수로 40명의 실행위원을 선출했는데 그 구성원은 대부분 읍내 상인과 대지주였다.

오경달 등은 순 조선인끼리만 총독부에 "진정과 최후의 호소"를 하기로 결의하고 진정단을 경성에 파견하며, 같은 시기 장기면 주민 70여명도 호소하는 진정서를 제출한 다음 도청 앞에서 격렬한 항의시위를 했으나 허사였다.

경부선 계획 수립 때 공주를 통과하게 됐으나 주민들이 반대해 대전 경유로 됐다.(『공주군지』) 그 때 찬성하고 환영했다면 경부선은 공주역에 공주 경유로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통이 불편>하다는 빌미도 없었을 것이고 도청도 이전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자업자득이라고 할까?

어쨌든 충주는 자고 일어나니 도청이 청주로 갔고, 공주는 백방으로 반대를 했으나 결국 대전 이전을 막지 못하고 1932년 10월 11일 이전됐다. 그 주역은 충북은 보직없는 일인 서기관이, 충남은 총독부였다.

그러나 충북은 몇 사람의 도청 일인만이 알았고 충남은 여러번 '논의한 일 없다'고 숨기다가 결국에는 예산도 세우고 공고도 했다. 두 곳이 공통된 것은 이전 사실을 숨기려고 한 것이다.

도청 이전 반대가 실패하자 공주 유지들은 '도청 이전 대가 지불'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13개의 요구를 했으나 결과는 1933년에 금강교 가설, 같은 해 3월13일 공주농업학교의 인가(『50년약사』), 1938년의 사범학교 설립정도로 끝냈다.

공주농업학교는 1910년 7월 28일 설립된 도립공주농림학교로 1922년에 예산으로 이전했고 1992년 공주대학교 산업대학(현 예산)이 됐는데 그 학교와 다른 학교이다. 1933년은 공주에 농업학교가 없던 때였다. 그러나 충북은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고 따라서 보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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