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홍 중

흔히 하는 말처럼 우리에게 일본은 가깝고도 먼 이웃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장 가까운 이웃이지만 정작 일본에 대해서 아는 것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학교 다닐 때 백제문화가 일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수도 없이 많이 들었지만, 정작 일본의 어떤 문화가 백제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은 것인지를 설명하라면 말문이 막혀버리고 만다.

우리 공주가 자랑하는 백제 제 25대 무령왕(재위 501~523)이 일본의 한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는 것도 최근에서야 안 사실이다. 이번에 일부러 무령왕이 탄생했다고 전해지는 가카라시마(加唐島)에서 개최된 제 10회 무령왕탄신제에 참가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무령왕이 탄생했다고 전해지는 가카라시마는 일본 사가현(佐賀縣) 앞 바다에 있는 작은 섬이다. 나고야항에서 출발해서 배로 20분 정도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자리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작은 섬이다. 전체 둘레가 약 12㎞ 정도에 불고하고,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민도 200명이 채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로는 초등학생하고 중학생이 함께 공부하는 초중학교가 하나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출발했던 나고야항이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출발지였던걸 감안해 볼 때 이 일대가 예로부터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배로 10여 분 거리에 이끼(壹岐)섬이 자리하고 있고, 그 뒤로 쓰시마(對馬島)가 있다. 그 뒤가 우리의 부산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쓰시마까지도 한눈에 보인다고 하니 섬과 섬을 연결하는 뱃길로는 제격처럼 보인다.

실제로 가카라시마 해안가에서는 우리나라의 페트병과 비닐봉지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류에 떠밀려 여기까지 건너온 것을 보면 무령왕이 이곳에서 태어난 것도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이러한 지형적인 잇점을 타고 서기 461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천 550년 전에 무령왕은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무령왕과 그 부모를 태운 배 한척이 한성(漢城)을 출발하여 오사카쪽으로 향하던 도중, 이곳 가카라시마 주변을 지나다가 갑자기 산기(産氣)를 느껴 이곳 작은 섬에서 태어난 인물이 무령왕이다. 무령왕의 이름은 사마(斯麻)인데, 섬에서 태어나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니 이 또한 무령왕이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다.

무령왕이 태어났다고 하는 동굴은 바닷가를 향해 입구가 열려있는 작은 동굴이다. 동굴이라고는 하지만 깊이는 깊지 않아서 그저 비를 피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도 입구가 바다를 향해 있고, 그 옆에는 무령왕을 씻겼다고 하는 우물도 하나 자리하고 있어 전설에 사실감을 더해줄 뿐만 아니라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왁자지껄하면서 동굴 입구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같이 간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일순 숙연함을 느꼈다.

동시에 우리의 무령왕이 탄생한 동굴을 이렇게 잘 보존해 온 가카라시마 주민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말로만 무령왕, 무령왕을 외쳐온 우리들의 모습이 일순 부끄럽게 생각되기도 하였다. 이제는 우리가 뒤를 이어 무령왕의 업적을 밝히고,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복원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조금은 가라앉은 마음으로 아리타(有田)를 향했다.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지명이지만, 공주 출신 이삼평(李參平)선생이 임진왜란 때 이곳으로 끌려와서 일본 땅에 처음으로 도자기 제작기술을 전한 곳이 아리타다. 그래서 어떤 교수님은 ‘아리따’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고 했다.

아리타에 도착해 보니 이삼평선생이 처음 일본 땅에 끌려와서 도자기 굽는데 적당한 흙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마다 마침내 찾아냈다는 도석(도자기 원료) 채취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 원래는 도석이 산처럼 지상에 솟아 있었는데, 오랜 세월 동안 캐내서 도자기를 굽는 과정에서 이제는 오히려 지하로 푹 꺼져 있다. 산 하나가 통째로 없어지고, 다시 지하로 새로운 산이 하나 생길 정도로 많은 도자기가 구워진 셈이다.

같이 갔던 계룡도예촌의 이재황선생이 채석장 앞에서 당시의 상황을 실감나게 설명해 주었다. 아울러 일본에 도자기 문화를 전해 준 공주는 아리타 보다도 더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힘주어 강조하였다. 도자기로 유명한 국내의 다른 시군이 아리타와 자매결연을 맺으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정작 아리타는 공주와 자매결연 맺기를 희망한다는 새로운 사실도 전해주었다.

자연히 우리 일행은 이삼평선생의 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본의 여느 묘소와 마찬가지로 화장해서 묘석만 세운 간단한 화장묘다. 일본에 도자기 문화를 전해준 도조(陶祖)의 무덤치고는 대단히 초라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 모두와 약주 한잔을 올리면서 잠시나마 이삼평선생을 떠올렸다.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는 사람, 아니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추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동행한 교수님께 이삼평과 관련된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면서 다시 한번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가볍게 따라나선 여행이었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볍지만은 않았다. 무령왕은 일본 땅에서 태어났지만 우리 땅에서 왕이 되었고, 이삼평선생은 우리 땅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에서 도조(陶祖)가 되었다. 서로 엊갈리는 삶을 살았지만 두 분 다 우리 땅에서 보다는 일본 땅에서 더 추앙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다.

이제부터라도 두 분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하나하나 밝혀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가라츠(唐津)아리타(有田)와 교류를 좀 더 심화시키고, 민간교류도 좀 더 다양하고 폭넓게 진행시켜 이제는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자리매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공주시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