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사상을 화두로 평생을 올곧게 산 소연(素然) 구상회 선생

신동엽 시인과 학창시절…동학심취
옛날 어법, 고전 문학에 깊은 인식

소연(素然) 구상회(具尙會). 1930년생. 의당 도신리 출신. 임진왜란 때 공주 의당 도신리에 피난 와서 뿌리 내린 양반가 능성 구씨 후손. 1950년대에 교편생활을 시작해서 공주여고, 강경여고, 서울 사립학교의 교사를 지냈고, 그 뒤 공주에서 여러 사업을 하다가 1982년부터 웅진동 시엇골에서 살고 있다.

평생을 드러나지 않게 사셨던 선생님이라 감히 글로 소개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공주 사람으로서 곧게 살아오신 모습을 소개하는 것은 뒷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해 소개해 올린다.
다음은 구상회 선생과의 일문일답.

- 우금티기념사업회가 공주에서 1993년에 발족했는데 1995년과 1996년에 우금티기념사업회의 2대 회장을 맡으셨다. 남달리 동학에 대해 애정을 갖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70년대, 80년대 젊은 사람들이 간간이 찾아 왔다. 동학을 연구하던 이이화, 우윤 등도 그런 사람들이다. 이이화 선생이 동학답사 안내책(동학농민전쟁 역사기행, 여강출판사, 1993년)을 내면서 공주지역 안내자로 나를 소개하면서 더 바빠졌다.

1970년대 초, 부여에서 신동엽 시인의 시비를 세울 때 공주대의 조재훈 교수를 만났다. 1990년 초 공주에서 동학 10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되면서 공주교대의 진영일 교수, 공주대학의 조재훈 교수, 그리고 내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회장을 맡게 됐다. 사실 조재훈 교수가 중국으로 유학을 가지 않았다면 회장을 맡지 않았을 것이다.

외지 사람들에게 공주의 동학을 안내하면서 확인 안되는 지명이 하나 있었다. 동학농민군이 공주를 공격할 때와 후퇴할 때 거점으로 삼았던 경천지역에‘괘등산’이란 지명이 나오는데 어딘지를 알 수가 없었다. 아들 자산이와 안식구와 같이 경천에 가서 보니, 등잔(기름을 담아 불을 밝히는 그릇)을 걸어놓은 형국의 모습의 산이 보였다. 동네 노인들이 그 마을을 등잔골이라고 했다. ‘등잔골의 산’을 한자로 풀어 적은 것이 괘등산(掛燈山)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 집안의 분위기가 동학과 가까웠다고 들었다.
△동학과 집안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가까웠다. 동학농민군이 공주를 공격할 때 경천에 전방사령부를 두었는데 당시 동학군의 세상은 대세였다. 그 당시 연산현감이 그대로 눌러 있었고, 아들은 동학에 입도를 했다. 노성도 노성현감이 그대로 자리를 지켰고 공주의 동학지도자 이유상은 노성을 보호하고 있었다. 전라감사 김학진은 동학군의 군량관이 되어 동학군을 돕고 있었다. 대원군도 동학군과 연관이 있었다.

동학군의 보급물자는 부자들, 고을 현감들에게 보급 받았다. 논산 성동에서 동학군들에게 양식을 내어 도운 이가 작은 누님의 시증조부 되는 조제주(제주목사를 역임한 조씨네 양반가)라고 했다.
동학농민군들의 반부패 개혁정신과 반외세 자주정신에 집안 분위기가 자연스레 가까웠다. 우리 민족이 온전하게 살기 위해서는 침략자 외세에 저항해야 하는데 동학농민혁명 때에는 농민들이 바로 그 역할을 했다.
또한 평등사상에 공감한다. 공주에서 동학의 정신이 잘 계승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자가 어쩔 수없이 칼을 쓰게 되는 경우가 있다. 동학농민혁명도 군자가 어쩔 수 없이 칼을 쓰게 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노자의 경지가 되면 손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양반들이 동학을 배척할 때, 공주 구상회 선생님이나 부여 신동엽 시인은 동학에서 우리 민족정신의 뿌리를 찾았다.
△나와 신동엽은 단국대 사학과를 다녔다. 6·25 때, 대전의 전시연합대학에서 2학년과 3학년 과정을 같이 마쳤다. 내가 대전에서 하숙을 했는데, 나의 하숙방과 부여 신동엽의 집에서 여러 친구들이 어울렸다. 당시 신동엽은 무정주의자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에 심취해 있었고, 나는 노자에, 또 다른 친구 이상비는 민족종교 증산도에 깊이 심취해 있었다. 증산도란 동학의 한 갈래이다. 이상비는 원광대 교수를 지냈는데 문인으로 평론가로 사상가로서 활동했다. 20대에 만난 평생 친구들이다.

(신동엽 시인은 서사시 ‘금강’(1967년 발표)과 여러 시(‘껍데기는 가라’등)에서 우리 민족의 정신이 동학에서 3·1운동으로 4·19혁명으로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신동엽 시인의 시에는 공주의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여러 구전과 공주의 지명 ‘우금치’, ‘곰나루’, ‘이인’, ‘봉황산’이 나와 마치 공주 사람인 것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20대의 젊은 시절에 신동엽 시인과 이상비, 구상회 선생 등 친구들의 사상적 교류를 짐작하게 한다.-글쓴이)

- 평생의 화두로 노자 사상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대의 젊었을 때부터 노자 이야기를 했다고 친구들이 이야기했다. 그 당시 노자 냄새를 맡은 것 같다. 농촌에서 살다보면 노자풍이 되는 것 같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 의당 도신리에 정착하면서 드러나지 않게 사셨던 선대로부터 받은 가풍이라고 생각된다. 조선후기의 붕당싸움으로 양반들이 제대로 명을 다하지 못했다. 3대가 무현관이면 평민이 되고, 양반은 장사는 못하기 때문에 벼슬길에 나갔지만, 권력에서 한 발 물러나 세상의 본질을 보려했다.

부친하고 나하고 할아버지 산소에 성묘를 갔는데 문득 할아버지 산소의 형국이 복치혈(伏雉穴)로 볼 수 밖에 없었다. 복치혈이란 꿩이 매가 무서워서 꼼짝 못하고 엎드려 있는 혈이다. ‘복치혈이구나’하는 나의 이야기에 아버지는 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입신공명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신 부친이 그러한 혈을 찾아서 모셨다고 본다.

또 한번은 부친이 어렸을 때, 서당 친구들과 비암사로 천렵을 갔다 왔던 이야기를 하면서, 친구들이 놀고 있는데 토굴에서 중이 나와서 소승도 한자리 끼자고 하면서 시를 읊기를 ‘천지가 비록 넓고 크나, 이 한 몸 오래 머물기 어려워라’하더라고 하면서 더 말씀을 안하셨던 기억이 있다.

다석 유영모 선생이 해방 후 목사들을 모아놓고 노자 도덕경을 강의했다. 유영모 선생은 기독교인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유영모 선생은 기독교에 머물지 않고 동서양의 사상을 아우르는 새로운 사상을 개척했다. 동서양의 여러 사상을 관통하는 큰 사상이 노자 도덕경에 들어 있다는 뜻이다.

<덧붙이는 말>
지난 겨울에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선생님의 건강이 더 악화돼 말씀듣기를 중단했는데, 지난 8월20일 구상회 선생님께서 별세하셨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선생님의 말씀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부족한대로 이글을 정리했다.

의당 도신리에 정착한 능성 구씨는 임진왜란 이후 많은 과거급제자를 내었지만 향지나 읍지에 싣지 않은 것은 집안의 풍습이라고 했다. 조선 후기‘공주에서 행악 안한 양반가’로서, 김아산(김갑순)이 의당 도신리에 와서는 말을 내려 능성 구씨가에 예를 차렸다는 자부심도 가지고 계신다.

구상회 선생님은 공주 동학농민전쟁의 답사 체계를 정리했고 답사를 통해 계룡면 효포 가마울 마을의 동학농민혁명 희생자 3인을 찾아내기도 했다. 94년 공주의 동학100주년 기념행사를 기념해 공주의‘동학기념사업회’에서 공주 동학농민전쟁 답사안내 소책자‘숨쉬는 우금티 동학농민전쟁 전적지 안내’소책자를 발간했는데 구전 정리와 많은 부분이 전적으로 구상회 선생님의 가르침에 의한 것이다.

2000년 들어 본인이 좀더 여유있게 되자 구선생님을 모시고 유구, 사곡, 이인으로 공주 동학운동의 흔적을 찾아서 여러 차례 답사를 했고 언제나 흔쾌히 응해 주셨다.
구상회 선생님은 우리 말에 대해 옛날 어법과 의미를 살린 새로운 해석들, 고전문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 한학, 노자 사상에 대한 깊은 인식들을 가지고 계신다. 글쓴이의 얕은 지식으로 제대로 소개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선생님의 관심사 중 동학과 노자 부분에 대해서만 소개해 드렸다.

끝으로 구상회 선생님이 평생을 화두로 삼았던 노자의 사상 중에서 뒷사람들이 깊이 새겨 보기를 권하는 ‘제4장 무원(无源) 편’을 소개한다.
‘길은 비고(沖) 쓰이고(用) 하니 혹 차지(盈) 않는고. 깊구나 만물의 뿌리가 같아라. 그 날카로움 무디고 그 얽힘 풀리며 그 빛 고르고(和) 그 먼지 한가지 하니, 맑구나 혹 계신 것 같아라. 우리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지 않으나 상제보다 먼저인 모습이어라(道 沖而用之 或不盈 淵兮 似萬物之宗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湛兮 似或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