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에 대해 생생히 증언하고 있는 이은찬 선생.

이은찬(의당면 용현리·82)선생은 6·25의 산증인이다.‘여·순 반란 사건’를 진압 후 강원도 원주에서 군복무 하던 중 전쟁이 반발, 이천→충주→문경→상주→낙동강까지 후퇴하기에 이르렀고, 낙동강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다. 이후 다시 전투에 참가했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북에 포위, 북으로 압송당하는 처절한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천신만고 끝에 탈출에 성공하고 마침내 55년 2월 전역하게 된다. 본지는 6·25를 맞아 이은찬 선생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전쟁의 참혹상 등을 회고해본다.
/편집자

‘여·순 사태’진압에 출동

이은찬 선생은 1949년 4월1일 대전보병 19연대에 군복무를 시작한다. 당시 상황은 전시는 아니었다. 같은 해 7월 서울에 위치한‘서빙고 부대’에 이동한 뒤, ‘여주·순천 반란 사건’이 반발해 이를 진압코자 출동하게 된다.‘서빙고 부대’는 일본 부대를 위해 지은 막사를 사용했다.
이 사건은 현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이‘반란’을 일으켜 지리산으로 은거함에 따라, 이은찬 선생 등이 포함된 4연대와 14연대가 진압에 선봉을 섰는데, 지리산 속에서 겨우내 고생한 생각을 하면 몸서리쳐진다고.
이 선생은 “우리가 구축한 진지가‘세속고지’였는데, 밤에 30분간 동안 보초를 선 군인들중에서 안 울고 오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추위는 엄청났다”고 말했다.
그는 “지리산 토벌을 위해 군인 한 명이 5일분 식량을 짊어지고 쫓아다닌 것으로 기억하는데, 고생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여·순 사건’진압 후 그 이듬해 4월 지리산을 하산하게 된다.

동족상잔 비극 6·25 전쟁 반발

이은찬 선생은 강원도 원주에 있는 19연대로 다시 원대복귀 했다. 그러던 중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이씨는 외출하지 않고 부대에 있었다. 갑작스런 비상소집이 이어졌는데, 그 때까지만해도 3·8선에 무장공비 2개연대가 출현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당시 민병권 중령이 연대장직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그 조차도 전쟁이 난 사실을 모른 채, 공비를 토벌하러 간다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19연대는 원주에서 춘천(3·8선)까지 1개대대만 트럭을 타고 이동, 나머지는 도보로 움직였다. 수송능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군대는 가평군 근처에서 피난민을 목격했고 26일 새벽에야 춘천에 도착, 전쟁발발 사실을 알게된다.
이 선생은 “도착했는데 느닷없이 포탄이 떨어졌다. 처음 당해보는 일이라 무척 당황했다”면서 “그럼에도 우리는‘칼빈 총’과, ‘탄띠’, ‘야전삽’뿐이었다”고 회고했다.
북한은 탱크로 밀어붙이고 있는데, 한국은 야전포 4대 뿐으로, 전력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포’에는 포탄도 없었다.

낙동강서 부상, 부산병원에 후송

19연대는 싸울 여력도 없이 바로 후퇴한다. 여주·이천에서→충주→문경→상주→낙동강까지 한 달만에 밀려났다. 인력이나 화력면에서 북한과 비교조차 못됐다. 그런와중에도 후퇴도중 적 탱크 17대를 물리치는 전과도 올렸다. 후퇴하던 중 계곡에서 게릴라식 공격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낙동강 전투에서 그는 공교롭게 아군포탄에 부상을 당한다. 발바닥과 목에 파편을 입어 정신을 잃고 부산병원으로 급히 후송된다. 병원은‘무늬만’병원이었지, 수술 도구가 거의 전무한 형편이었다. 3일만에 깨어난 그는, 4개월만에 부대에 다시 투입된다. 그 때가 51년 1월이었다. 투입된 부대는 충북 영월에 위치한 8연대 소속이었는데, 중공군 개입으로 평창군으로 또다시 후퇴하기에 이르렀다.

중공군 포위 후 북으로 압송

인해전술로 나온 중공군은 가히 위력적이었다. 물밀듯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군의 전술과 전략은 속수무책이었다. 급기야 이씨가 속한‘군단’전체가 포위 당하기에 이르렀고, 3000여명이 북으로 압송 당하고 말았다.
당시 기억으론 밤에만 움직임으로써 이동경로를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그는 어렴풋이 압송된 지역이 북한 원산 근처인‘신고산’에 수용됐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김일성 찬양과, 북한군이 반드시 이긴다는 등의 정신교육에 치중했으며, 가혹행위는 없었다.

신분탄로…생사 일촉즉발

당시 이은찬 선생의 계급은 소대 선임하사였다. 일반 사병이 아닌 간부급이어서, 그는 살기 위해 계급을 일등병으로 속이고 포로 생활을 연명해나갔다. 그러던 중 함께 포로였던 동료 김세관 하사가 북한군에게 이를 폭로,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됐다.
동료를 고발함으로써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총살형 등 이 처해지는 위기에 내몰렸지만, 구사일생으로 모면하게 된다. 하지만 3개월간 극도의 정신교육을 받았고, 밑에 물이 흐르는 굴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북한군은 포로들을 비오는 날과 밤에 굴을 파도록 시켰고, 낮에는 굴속에 가둬놨다. 비 오는 날은 비행기가 뜨지 못하기 때문이다.

냇물따라 무작정 탈출, 성공

포로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북한군은 이씨를 데리고 후방에 보급품 배급을 위해 동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움직이면서 냇물 등 주변상황을 꼼꼼이 살폈다. 이후 자동차가 보이자 아군분대가 인근에 위치해 있음을 직감한다. 당시 인민군에는 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항상 탈출을 꿈꿔왔던 이씨는, 마침내 탈출을 결심했다.
급기야 그는 포로생활 동안 절친이었던 동료(부산출신)선우씨와 함께 탈출을 감행했다. 야밤에 냇가를 지나 골짜기를 우회해 남쪽으로 무작정 달렸다.
이은찬 선생은 “당시에는 냇가를 따라 내려가면 아군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하고 무작정 내려갔다. 산에는 지뢰가 설치돼 있어 냇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수류탄을 한 발 소지했는데, 이는 걸리면 자살하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2명은 철조망까지 다다랐고, 위치가 불분명해 날이 밝아올 때까지 물속에서 기다렸다. 당시 안개가 너무 짙어 오전10시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미 해군 “북 지령받은 간첩”

10년 같은 하룻밤이 지나고 결국 철조망 앞의 부대는 양구군에 위치한 미 해병1사단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군부대에 들어선 이씨는, 간첩누명에 또다시 힘겨운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20번에 달하는 취조과정과 심사를 거쳐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미 해군은‘북쪽에서 지령 받고 내려온 간첩’이라며 색안경을 끼고, 좀처럼 풀어주질 않았다.
미 해병대는 신분을 확인코자 육군본부에 조회했지만, 당시 전쟁 상황이어서 확인이 어려웠다. 전쟁 중 부상당한 경력을 밝혔지만‘병상일지’또한 없었다. 증인도 없었다. 이은찬씨는 현재까지도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후 그는 1955년 2월 이등상사로 전역했다. 휴전이 이뤄지고 한참 후에야 전역하게 된 것이다. 이 선생의 손에는 무공훈장과 화랑훈장 2개가 쥐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