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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4월, 그러나 그들이 있어 흥겹다 |
| [칼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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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덕 수
벚꽃이 화사하게 피는 4월, 주말에는 동네 야산에라도 올라야지 했다가 번번이 청첩장의 초대에 응하다 보면 짧은 봄날은 야속히 가고 만다. 게다가 요즘은 웬만하면 초대지가 서울이라서 부여에서 서울 갔다 오면 금쪽같은 하루가 지나간다. 그래도 죽어라고 가는 곳은 초등학교 동창생 자녀들의 예식장이다. 언제나 초등학교 동창생들과의 만남은 흥겹다. 시인 신경림은 ‘파장’이라는 시에서 시골 장터를 이렇게 노래한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촌의 시골마을에서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 그들은 시골장터이든, 서울 예식장이든 어디서건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서울, 요즘 서울은 나날이 좋아진다. 심지어 좋은 꽃도 서울에 더 많이 핀다. 북악산,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명산도 많다. 또한 시내 한 복판에 경복궁, 덕수궁, 종묘, 창경궁, 창덕궁 등 세계가 인정한 우리 문화유산이 있다. 비원을 품고 있는 창덕궁은 사시사철 아름다운 곳이다. 그 중에 봄의 창덕궁은 더 아름답다.
그 창덕궁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봄나들이를 했다. 4월 중순 전통문화연수원에서는 공주시 계룡면 소재의 복지시설에서 장애인 수십 분을 모시고 문화유산 등을 배우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찾았다. 그분들은 너무나 좋아하고 흥겨워하고 감사해 했다. 연수원에서 수 십 개의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해 봤지만 이렇게 좋아하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는 분들을 본적이 없다. 나도 눈시울을 붉혔다. 왜냐하면 이 분들이 서울구경을 처음 했다는 말을 들으며 박목월 시인의 ‘윤사월’이라는 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송화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시에서처럼 우리들의 할머니와 누님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나들이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이 좋은 꽃피는 시절에 계룡산 산골자락에서 문설주에 귀대고 울며 하루하루 지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문학인 ‘박완서’못난 사람들에게 무릎 꿇고 싶다
4월을 넘긴 신록의 오월, 첫날에 공주박물관에서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의 특강이 있었다. 개성에서의 유년시절 할머니와 엄마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이야기, 서울에서 겪은 6·25 전쟁의 참상 등이 훗날 40대가 되어서 소설가로 등단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할머니가 옛날이야기 하듯이 들려 주셨다. 순간순간 환하게 웃고 미소 지을 땐 소녀 같이 보이다가도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땐 추상같이 날카롭고 도도하였다. 문학은 꿈 꿀 수 있는 자유를 준다. 문학은 꿈꾸게 하는 힘을 준다. 살았던 시대에 대한 사랑, 이해, 배려, 그리움이 소설을 쓸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문학을 해서 다행인 것은 이 세상을 평등하게 본다는데 있다. 자긍심도 대단하다. 잘 난 사람을 봐도 기죽지 않는다. 그러나 못난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 보다 더 아래로 느껴져 무릎 꿇고 싶어진다. 이렇게 문학은 인간을 평등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 인간을 인간으로 고귀하게 볼 수 있게 하는 힘을 문학이 준다.
장자는 왜 그들을 도인이라 했을까?
중국의 사상가이자 철학가인 장자가 지은 장자의 이야기에는 주로 장애인이거나 추하거나 못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도와 예술을 이야기 한다. 이들 중 어떤 사람은 곱사등이고, 어떤 사람은 양쪽 넓적다리가 굽은 사람이고, 다리가 잘린 사람, 목 위에 사발만한 혹이 있는 사람, 입술이 없는 사람, 얼굴이 기괴한 사람 등 모두 기형이고 괴상하고 추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도인이거나 예술인들로 당시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존경을 받았다.
장자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는 사람의 외형이나 외모 등 미관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덕이다. 오히려 외면이 기이하고 추하면 내면의 내재적 숭고와 역량을 더욱 힘있게 표현해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외면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의 경지에 노닐 수 있어 도인이나 최고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사람을 보면서 내면의 덕을 보지 않고 외면과 외형으로 잘난 놈 못난 놈, 성한 놈, 장애인을 구별했다. 그러나 장자가 지적한대로 진짜 도인은 오히려 못난 놈, 장애인들이 진정한 도인이고 자유인이다. 그렇다. 그래서 오늘날의 문학인 박완서 선생님이나 신경림 시인이 못난 분들에게 기꺼이 무릎 꿇거나 흥겨워 하는 것이다.
/문화재청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문화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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