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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을 초월했던 공주의 삼일운동
[기고]-김정섭 전 공주시장 후보
[1207호] 2017년 03월 13일 (월) 18:23:51 공주신문 webmaster@e-gongju.com
   

3월14일은 공주에서 삼일운동이 처음 일어난 날이다.
#1. 1919년 3월14일, 유구사람 황병주는 신문을 통해 경성의 만세시위 소식을 접하고 유구 장터에 나가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오후 4시경이었다. 삽시간에 호응하는 주민들이 늘어났다. 일제의 강압통치에다가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풍문이 널리 퍼졌던 때였다. 주민 수백 명이 유구 장터와 우시장을 돌며 만세를 외치자 일본인 순사와 조선인 순사보가 황병주를 체포해갔다. 주민들은 주재소로 몰려가 황병주의 석방을 요구하며 주재소 출입문과 창문을 깨부쉈다. 급기야 공주읍내에서 급파된 헌병경찰 십여 명이 시위를 강제 진압하고 주동자들을 잡아가뒀다. 관련자 12명이 최고 징역 3년 등 실형을 받았다.

#2. 4월1일 아침, 정안 석송리의 이기한은 마을 주민들을 모아 독립만세 시위를 주창했다. 주민들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를 부르며 면소재지인 광정리를 향해 행진했다. 나무심기 부역에 동원되었던 운궁리 주민들이 작업 연장을 들고 합세하는 등 정오쯤에는 수백 명으로 불어났다. 이들은 광정시장에서 만세를 외치다 주재소를 포위하고 담장과 게시판, 유리창을 깨뜨리고 오후 3시경 해산했다. 그런데 석송리 주막거리에 모여 있던 30여 명의 주민들 앞에 공주읍내에서 자동차로 달려오는 순사들이 나타났다. 주민들은 그들을 가로막고 만세를 외쳤다. 경찰들과 난투극을 벌이다가 1명이 총을 맞아 즉사하고 십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날 밤 주민들은 다시 횃불을 들고 광정리 주재소로 가 연행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주동자 이기한이 징역 3년을 받는 등 모두 25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3. 같은 4월1일 오후, 공주읍내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영명학교를 중심으로 사전에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시위였다. 영명학교 졸업생인 오익표 안성호가 일본에서 돌아온 2월경부터 학교 교목이자 공주감리교회 목사인 현석칠, 전임 안창호 목사, 교사인 김관회, 현언동, 이규상 등이 학생과 주민들을 끌어모았다. 공주청년회가 배후에서 지원했다. 이들은 독립선언서 1000여 장과 태극기를 만들어 장날인 4월1일, 장꾼들이 가장 많은 오후 2시에, 당시 중동에 있던 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하지만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던 헌병경찰들이 달려들어 진압되고 말았다. 공주읍내에는 충남도청과 도경, 공주경찰서, 헌병분견대가 주재하면서 억누른 탓에 시위는 더 커지지 못했다. 이때 19명이 체포되고 그중 10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4. 4월1일은 천안 아우내 장날 만세시위가 일어난 날이기도 하다. 류관순은 영명여학교에서 2년간 보통과를 수학하고 이화학당으로 진학했다. 3.1만세 시위 이후 고향에 돌아온 그는 만세시위를 주도면밀하게 준비해 수천 명이 참여하는 큰 시위를 성공시켰다. 중과부적이던 일제는 총칼로 무자비하게 진압해 무려 19명이나 학살했다. 류관순은 공주로 잡혀와 조사받고 1심 재판에서 5년형을 선고받은 후 항소해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었다.

이밖에도 공주 여러 곳에서도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의당면(4.1), 정안면 대산리(4.2), 장기면 대교리(4.3), 우성면 도천리 쌍신리 동대리(4.3), 탄천면(4.3), 주외면 용당리(4.4), 목동면 이인리(4.4), 계룡면 경천리(4.4), 반포면 상신리(4.5) 등이다. 조선군사령부의 '조선 소요사건 일람표'에 따르면 공주 관내 만세시위로 1명이 죽고 13명이 부상했으며 총 86명이 검거되었다고 한다.

만세운동의 주도세력도 다양했다. 유구의 황병주는 천도교(동학)인이었고 정안의 이기한은 유학자였으며 공주읍내의 시위를 주도한 것은 기독교인들이었다. 민족의 커다란 환난 앞에 이념도 종교도 신분계급도 뛰어넘은 것이었고 이러한 민족대단결 정신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본정신으로 이어졌다.

 98년이 지난 2017년 봄, 무너진 민주주의의 복원과 나라의 새로운 기틀 정립이라는 과제 앞에서 공주 선조들의 독립정신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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