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재학 중인 한일고에서 유일하게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는 시간은 9시부터 9시 20분까지. 휴식 겸 간식시간에 9시 뉴스 방송을 틀어준다. 메르스와 같은 특별한 사회문제가 없는 한 20분 동안의 뉴스 시간의 절반이 넘는 시간은 정치 뉴스로 채워진다. 이렇듯 우리는 생활 속에서 '정치'라는 단어를 너무나 쉽게 또 자주 접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정치의 정의를 분명히 세우고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기본적으로 정치학을 영어로 'Politics'라고 부른다. 어원을 살펴보자면 'poli-' 는 다수와 관련되었음을 뜻하는 접두어이고 '-tics'는 학문의 이름에 붙는 접미어이다. 한마디로 정치는 개인적 행위가 아닌 공동체와 다수의 구성원들에 주목하여 어떻게 하면 공동체를 원만하게 운영할지를 고민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학에서는 크게 두 가지의 정치의 정의가 존재한다. 데이비드 이스턴의 '가치의 권위적 배분' 과 칼 슈미트의 '공동체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내는 일련의 행위' 가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말해 정치란 사회 속에서 자본과 노동을 투입하여 창출해 낸 재화와 서비스들에 대한 분배 구조를 디자인 하는 것이며 자신의 공동체의 유지와 안전을 목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렇듯 정치는 우리와 관련 없는 멀리 떨어진 개념이 아니며 정치인이라는 소수에게만 허락된 '그들만의 전유물'은 더욱 아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생활 속에서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나 소속 공동체의 불공정한 가치 분배를 인식한다면 그것은 정치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이 사회에서 생산하는 가치의 총합은 한정되어 있으며 생활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그 한정된 가치의 총합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정치 주체가 되어 집단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태동한 아테네에서는 원래 모든 시민들이 동등한 권리를 갖고 정치 과정에 참여하였다. (시민의 자격이 노예가 아닌 성인 남성에 한정되었지만 말이다.)

현대 사회가 복잡해지고 구성원의 수도 늘어나게 되어 '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하게 되었고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대신 손으로 뽑은 의원들이 정치 과정에 참여한다. 그러나 공동체의 단위를 '국가' 가 아닌 '도시'로 두게 된다면 시민들이 더욱 직접적으로 정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스위스에서는 시민들이 몇 개월을 주기로 광장에 모여 안건을 상정하고, 토론하며, 직접 표결을 통해 정책을 결정한다. 이러한 시민 중심의 의회를 '란츠게마인데' 라고 부르며 이것이 이루어지는 도시들 중 하나인 스위스의 글라루스는 인구수가 3만명에 이른다. 시민들 중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은 4,000여명 정도이다. 비록투표를 통해 선출된 대표들은 아니지만 십수명의 시의원들이 결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직접적으로 민의를 반영할 수 있다. 개방형 의회인 '란츠게마인데'에서 사회적 가치를 배분하니 사안에 따라서는 각 정책의 이해 당사자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대화하고 토론할 것이다.

직접적 이해당사자들인 시민들은 그들의 대표자인 시의원보다 정치 과정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강력한 유인이 있다. 시민들은 누구를 대표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정치적 사안을 다루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도시들이 직접 민주정치를 실현한다면 공주 역시 부분적이나마 직접 민주정치의 요소를 실현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물론 현재에도 다양한 지자체들에서 '주민 참여 예산제', '주민 소환' 등의 제한적인 제도들을 운영하고는 있으나 과연 그것들을 통해 시민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될지는 의문이 든다.

공주시가 정책의 결정 과정을 시민들에게 더욱 공개하고 열린 장에서 자유롭게 대화와 토론이 오가는 '광장 정치'를 실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럼으로써 공주시가 '전국에서 가장 선진화 된 정치의식을 갖춘 도시' 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면 이는 전국의 다른 모든 도시들이 앞 다투어 닮고자 하는 공주의 또 하나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